『좋은 습관’을 갖게 위해선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에서 말했듯이, 나는 넷플릭스를 매일 본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만큼 ‘사랑한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영화 한 편 보기 쉽지 않다. 추천 목록만 뒤적이기를 30여분. 마침내 하나 볼까 싶어 눌렀다가 5분 정도 보고나서 다시 추천목록에서 다른 콘텐츠 찾기를 반복. 정작 본 건 아무것도 없이 내 소중한 시간만 흘려간다. 그러다 왠지모를 피곤함에 넷플릭스 보기를 포기한다. 그래서 요사이 영화 한 편 보기 쉽지 않다.
‘고르다 시간 다가네.’, ‘볼 거는 많은데 볼 건 없네.’ 등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문제를 호소하는 글을 종종 본다. 역시나 유독 나만이 겪고 있는 문제만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번에는 작품을 고르다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넷플릭스 증후군(Netflix Syndrome)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넷플릭스 증후군에 숨겨진 사회학적 심리현상을 통해 현대인이 갖고 있는 드러나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넷플릭스 증후군(Netflix Syndrome) 당신만 겪고 있지않다.
22018년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졸업식날, 연설물을 낭독하는 졸업생 피트 데이비스(Pete Davis)는 일찍이 우리 대부분이 겪고 있는 ‘넷플릭스 증후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1)
지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켭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이것이 좋을까? 잠깐. 이것보다 아까 그게 좀 더 재미있을 것 같던데.’
이런 고심을 하며 무엇을 볼지 다시 뒤져봅니다. 이런 끝나지 않는 반복되는 패턴에 결국 아무것도 본 것없이 시간만 흘려 보냈습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선택한 넷플릭스가 오히려 나를 더욱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현대인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증후군’은 우리 세대를 대변해주는 신조어입니다.”
넷플릭스 증후군은 ‘풍요 속의 빈곤’, 너무 많은 선택권으로 인해 무언가를 결정 내리기 어려운 현대인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잘 보여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현대인에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2)
“넷플릭스 증후군은 현대인이 갖고 있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너무 다양한 콘텐츠 때문에 선택하고 보기까지의 과정에서 피로감이 과다하게 누적되는 것이죠. 또 현대인들이 입시, 취업 등 경쟁 사회를 거치면서 여가를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후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연습이나 적응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가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죠.’
‘많은 선택의 기회’는 오히려 독
‘많은 선택의 기회’가 ‘넷플릭스 증후군’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객원 교수이자 저명한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 (Barry Schwartz) 교수의 저서, 『선택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Choice)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선택의 과잉’이 가져오는 악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본의 평균 소득은 폴란드의 10배에 가깝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수는 두 나라가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일인당 소득이 2배 이상 높아진 미국인들의 행복지수는 거의 높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국가가 성장한 만큼 선택지의 수도 늘어났지만, 그만큼 자신이 더 행복해졌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배리 교수는 주장한다. 그의 저서에서 ‘선택의 과잉’은 삶의 만족도를 떨어트리고, 우울증을 가져오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3)
넷플릭스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배리 교수의 주장처럼 다양하고 많은 선택의 기회가 넷플릭스 증후군을 일으키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만의 문제점과 취약점을 잘 알고 있다.
넷플릭스는 알고리즘(algorithm) 개선을 위해 2006년부터 4년간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 ‘시네매치(Cinematch)’의 품질을 개선하는 팀에게 상금 100만 달러 (약 12억 원)를 주는 ‘넷플릭스 프라이즈’ 공모전을 연다. 그리고 800여 명의 신규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등 이용자 취향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4)
코리 바커 (Cory Barker) 교수는 그의 저서 『넷플릭스의 시대』에서 ‘넷플릭스가 만든 ‘시대’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오래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다양한 성공 요인들 가령 현지화 전략, 양질의 콘텐츠, 초월적 시간성과 공간성 등 외에도 특히 빅데이터에 기반한 초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 전략은 이용자의 욕망을 사로잡고 어필하기에 충분한 효과를 거두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점점 더 발전해나가는 빅데이터와 AI 기술로 고도화되고 있는 추천 알고리즘은 소비자 자신도 몰랐던 본인의 숨겨진 취향까지 족집게처럼 짚어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5)
성공적인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
실제 빅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 전략은 분명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며, 넷플릭스의 매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넷플릭스 자체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콘텐츠의 80%는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시청되고 있으며, 실제 매출의 75%가 추천 알고리즘 덕분이라고 밝혔다. 또한, 구독자 대부분의 성향은 이런 추천 알고리즘을 믿고, 신뢰하며 따른다고 분석되었다. 그만큼 추천 알고리즘은 넷플릭스 사업에 있어서 중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6)
그러나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넷플릭스 증후군
이와같은 넷플릭스의 노력과 결실에도 불구하고, ‘초개인화 서비스’는 과연 넷플릭스 증후군의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스티브 맥커운(Steve McKeown)외 몇몇 심리학자들은 ‘넷플릭스의 개인맞춤 서비스’가 결코 넷플릭스 증후군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고 있다.
그들은 ‘선택의 과잉’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심리적 변화가 ‘넷플릭스 증후군’의 진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스티브 맥커운 교수는 넷플릭스 증후군에 걸리는 이유가 선택 그 자체에서 오는 갈등, 스트레스, 피로감 등의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한다.(7)
우리가 편안히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앱을 켰을 때를 상상해보세요. 처음 메뉴를 확인하고 무엇을 봐야 할지 뒤적일 때 보통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드라마가 재미있을까? 아니면 저 영화가 나을까?’
이렇게 무언가를 선택하는 과정은 겉으로는 무척 간단하고 쉬어 보입니다. 그러나 내제된 속마음에서는 여러 갈등이 일어납니다.
바로 ‘옳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죠.
이러한 갈등이 쌓이고 축적되면, 점점 더 많은 스트레스, 피로감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 쌓였기 때문입니다.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인 것이죠.
스티브 맥코운 교수는 또한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볼지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존성 인격장애’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7)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볼지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존성 인격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 이하 DPD)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DPD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모든 행동과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모습을 보여주죠.
더욱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넷플릭스가 의존, 결정장애, 책임회피 등의 상황을 지속해서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매 순간마다 선택을 강요하는 메뉴, 내가 주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강요당하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 등은 DPD에 걸릴 확률을 높이고, 더 나아가 우울 장애와 불안 장애를 유발합니다.
마무리 – 자신만의 옳은 선택과 신념을 믿는 삶
결론적으로, 넷플릭스 증후군은 ‘선택의 과잉’과 ‘옳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외의 다양한 심리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현대인의 정신적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 증후군’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기 전 미리 쇼핑 목록을 작성하듯,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미리 선택한 후에 시청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이러한 방법이 정작 ‘넷플릭스 증후군’을 없앨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선택을 과감히 믿어보는 방법은 어떨까? 한번 선택하고 끝까지 시청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좋든 싫든, 최소한 선택을 위해 소비한 아까운 시간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넷플릭스 증후군’은 단지 넷플릭스라는 작은 섬나라에서만 생기는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 정신병은 다양한 사회분야에서 또 다른 얼굴과 이름으로 나타나고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 (Barry Schwartz)의 다음과 같은 말이 크게 와 닿는다. 오늘도 당신이 ‘자신만의 옳은 선택과 신념을 믿는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처
- 1) Pete Davis, What Netflix Taught Me About Life, Goalcast Inspirational Speech, 2018/7/3
- 2) 김가연 기자, “뭐 볼지 고민만 1시간” ‘넷플릭스 증후군’을 아시나요, 아시아 경제, 2020/9/19
- 3) 배리 슈워츠, 선택의 패러독스, 웅진닷컴, 2004/9/5
- 4) Tracy V. Wilson & Stephanie Crawford, How Netflix Works, HowStuffWorks
- 5) 코리 바커, 마이크 비아트로스키, 넷플릭스의 시대 시간과 공간, 라이프스타일을 뛰어넘는 즐거운 중독, 팬덤북스, 2019/9/27
- 6) Sameer Chhabra, Netflix says 80 percent of watched content is based on algorithmic recommendations, MobileSyrup. 2017/8/22
- 7) UNILAD, People Who Can’t Decide What To Watch On Netflix ‘Are Needier’ Says Expert, UNILAD, 2017/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