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국 여행 간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는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데 유독 이번 미국 여행이 가장 최악이었다며 다음부터는 절대 미국으로 여행 가지 않겠다는 말까지 남겼다. 친구는 왜 이런 말을 남겼을까?
그건 미국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팁 문화’ 때문이었다. 물론 ‘팁 문화’는 오래된 미국 사회적 관행 중 하나다. 그러나 코로나 판데믹 이후 ‘팁플레이션(팁+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 현재 25% 이상의 팁을 줘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식당 및 특정 서비스업에 한 해 주던 팁을 다른 곳에서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입해도 팁을 요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팁 문화’가 미국 전역에 퍼졌다고 봐도 될듯하다.
미국의 ‘팁 문화’를 그들만의 문화라고 단순히 인정해 주기에 도가 지나칠 지경에 이르자 사람들은 ‘팁 문화’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잘못된 사회적 체계가 만들어낸 이 질병과 같은 문화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주제는 미국의 팁 문화다. 미국 팁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부터 세계인과 미국인이 어떻게 팁 문화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현재 유행 중인 ‘디지털 팁 문화’와 그가 가져다준 충격적인 사회현상, 그리고 팁 문화 반대 운동까지 두루 살펴본다.
미국에 거주하시는 분 혹은 미국 여행을 고려하시는 분, 사회 현상과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 더 나아가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고 있는 분들에게 꽤 유익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미국 팁 문화의 역사
1.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팁 문화
팁 문화의 기원을 찾기 위해선 16~17세기 중세 유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당시 귀족은 하인이 뛰어난 성과를 내면 그에 대한 추가 사례금을 주는 관습이 있었다. 어느 사회학자는 하인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 행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1850년대 부유한 미국인들은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유럽 귀족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여행을 다니던 그들 눈에 유독 들어오는 행동이 있었다. 바로 ‘팁’을 주는 유럽 귀족의 모습이었다. ‘팁’을 주는 행동이 미국 귀족인 자신의 우월함을 내보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팁 문화’를 미국으로 가져온다. (1)
2. 거센 반발에 부딪친 초창기 팁 문화
처음 미국 귀족들이 가져온 유럽의 팁문화는 미국 사회에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팁에 대한 높은 저항도 있었고, 무엇보다 팁 문화 자체가 ‘미국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평민들은 이미 비싼 외식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을뿐더러 팁을 추가로 더 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상류층들의 허영심과 교만을 일찍이 눈치챈 미국 지식들은 팁을 주는 행위가 그들의 계급주의적 경향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이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전형적인 귀족적 사고를 보여주는 ‘팁’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린 유럽을 떠났다. ‘팁 문화’는 민주주의라는 가슴 안에 존재하는 ‘암’과 같은 존재다.
-윌리엄 스콧(William Scott )-
3. 새로운 노예 제대의 역활을 한 팁 문화
지식인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국 남부 지역에서 팁 문화가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에는 ‘노예 제도 철폐’가 있었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마침내 노예 제도에서 해방된 흑인 노예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비스업뿐이었다. 그때 일부 악덕 고용주는 흑인을 고용하되 시급 대신 후원자의 팁을 통해 수익을 얻게 했다. 팁으로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흑인 노동자들은 결국 노예를 벗어나게 되었지만 다시 자본의 노예로 돌아간 셈이었다.
그리고 이를 완벽하게 활용한 회사가 풀먼 컴퍼니 (Pullman Company)였다. 이 회사는 미국 철도의 전성기인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궤도차를 생산했던 회사였는데 새로 해방된 남부 흑인 남성을 짐꾼이나 웨이터로 고용하였다.
회사는 그들에게 최소 임금만을 지불했고 나머지는 팁으로 받게 했는데 고용된 흑인들은 이에 불평·불만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풀먼 기차 서비스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미국에서 팁을 주는 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팁 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이다.(2)
3. 시대 변화 따른 팁 문화 규정
팁을 받는 근로자는 사회적 약자이자 소득 최하위층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적 울타리인 법안에서도 소외되기 일쑤였다. 1938년 미국 공정근로기준법(The Fair Labor Standards Act)에는 연방 최저 임금, 주 40시간 근무제, 아동 노동 금지 등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팁 근로자에 대한 어떤 조항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 이후, 1942년 대법원은 직원이 팁을 받으면 그 돈 모두는 직원이 소유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다. 이는 미국 법에서 팁을 소득의 일부로 공식인정하게 된 사례로 지적된다. 그리고 1966년 미국 의회는 들이키지 말아야 할 ‘독이 든 성배’를 마신다. 바로” 팁 크레딧(tip credit) “이다.
이 제도는 음식점 직원에게 최저 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합법적으로 허용하며, 팁이 최저 임금 기준을 넘어설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률이 왜 위험할까? 일하는 사람이 팁을 받도록 하는 것이 법률로 정해졌다면 좋은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문제는 최소 임금에 팁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고용주는 이 법률을 악용해 팁 근로자에게 ‘팁을 많이 받으니 나는 월급을 적게 줄 권리가 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미국의 최저 임금은 시간당 2.13달러에서 4.02달러로 올랐지만, 여전히 43개 주에서는 26년이 지난 지금도 시간당 $2.13를 받고 있다.
2018년 미국 노동부는 팁 풀링(Tip Pooling)이라는 조항을 팁과 관련된 법안에 포함시켰다. 이 변경으로 웨이터 직원의 팁을 고용주가 함부로 가져갈 수 없으며, 팁에 대한 모든 권리는 팁을 받은 대상자 직원에게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요리사와 식기를 세척하는 근무자 등 팁을 받기 힘든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팁을 공유하지 않는 환경 속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외모와 인종 때문에 팁을 적게 받는 사람들 모두 ‘팁의 희생양’이 되어 버린다.
결론적으로, 팁 문화는 노예제도의 유산이자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 고용주를 위한 비밀 병기인 셈이다.
4. 한눈에 살펴보는 미국 팁 문화 타임라인
세계인이 보는 미국의 팁 문화
미국 팁 문화는 다른 많은 국가의 관습과 확연이 구별된다. 그래서 내가 받은 서비스에 대한 보답의 표시로 소정의 금액을 남기는 것이 마냥 낭만적이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미국 팁 문화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과연 미국의 팁 문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미국을 가장 많이 방문한 상위 10개 국가 1,300명에게 미국의 팁 문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았다.(3)
도를 넘은 미국의 팁 문화
위의 ‘미국 팁 문화에 대한세계인의 인식’ 프레젠테이션 자료처럼, 미국을 찾는 관광객 중 거의 대부분은 미국 팁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예전에는 레스토랑이나 마사지 샵, 호텔 등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에 한해 팁을 주던 것이 코로나로 사태 이후로 그야말로 모든 업종에서 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태블릿 결제’ 시스템의 확산으로 이른바 ‘디지털 팁 문화’가 생기면서 더욱 노골적이며 집요하게 팁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의 ‘팁 문화’가 도를 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은 미국 ‘팁 문화’의 확산 이유 3가지를 찾아보았다.
미국 현지인이 생각하는 팁 문화
이쯤에서 궁금해질 것이다. 잠시 몇일에서 몇주만 지내는 관광객이 아닌 자국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은 자신의 팁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과연 얼마만큼의 팁을 주며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포브스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95%가 팁을 주는 편이며 평균 11%~20% 정도의 팁을 낸다고 밝혔다 . 또한 3명 중 1명은 팁을 주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며, 18%는 팁을 주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그래프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5)
유행하는 디지털 팁 문화
한국에서도 이젠 흔하게 볼 수 있는 무인 주문기(키오스크). 주문이 끝난 후 갑자기 얼마만큼의 팁을 주시겠냐고 묻는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미국에서 태블릿 결제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팁 문화’가 만들어졌다. 터치 스크린 형태의 단말기나 키오스트에서 결제할 금액 입력 후 팁을 얼마 줄 건지 물어보는 창이 바로 이러한 형태라 볼 수 있다.
앞서 포브지의 보고서를 유심히 살펴봤다면, 디지털 팁이 평균적으로 최소 11%나 더 높은 팁을 얻어내게 만들었다는 내용에 조금 의아해 할 수 있을 수 있다. 무인이니 안내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태블릿 결제 창에 팁 제시 금액이 18%, 20% , 30%로 나와있다면 팁을 10%만 주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18%를 누를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디지털 기계상에 표시된 숫자가 실제 현금이라는 인식이 적어 쉽게 팁을 주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팁을 얼마 주겠냐고 물어보는 태블릿 화면을 아무말 없이 들이미는 점원에게 ‘팁 주지 않음’ 버튼을 누를 만큼의 강심장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5)
서서히 화를 내기 시작하는 미국인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작게나마 팁을 주는 것이 기본 에티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팁을 주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고 팁을 주지 않는 사람을 오히려 인색하다며 창피해한다. 그러나 적당히를 넘어서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서까지 반강제적으로 팁을 내야 하는 그들은 서서히 지쳐갔고, 급기야 화를 내기 시작한 사람도 생겨났다.
팁에 대한 불만을 SNS에 쏟아내는 사람들은 기존과 똑같은 서비스 품질에도 20~30%의 팁을 더 부담해야 하는 불공평성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사업주들 본인이 져야 할 인건비 부담을 직접 고객에게 더 쉽게 전가하는 새로운 ‘디지털 팁 문화’에도 환멸을 느낀다고 말히는 사람도 있다. (6)
고객뿐만 아니다. 팁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근로자 또한 과열된 팁 문화를 결코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팁이 생계수단인 그들에게 더 이상 팁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고객들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어떨까? 그래서 팁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이제 적당히 하자는 분위기가 있긴하다. 그러나 시대 흐름이 ‘팁플레이션’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또 다른 의견도 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빈곤층이거나 최하위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여성과 비 백인의 팁이 더 낮은 편이며 팁 문화 자체가 오히려 사회적 차별을 부축이며, 안정적인 임금을 받는 근로자보다 더 적게 벌어 사회적 격차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팁 문화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팁 문화 반대 운동, 하나의 공정한 임금(One Fair Wage)
예전부터 미국 내에서 팁 문화 반대운동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만 거듭했다. 그 이유는 팁 문화 자체가 미국의 전통이라며 이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 차이와, 팁 문화를 없애면 인건비 부담이 커져 사업가에게 타격이 갈 것이며 이는 다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주장하는 경제학자와 정치인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공정한 임금(One Fair Wage)‘ 운동은 조금 다르다. 이 운동은 좀 더 체계적이며, 적극적인 정치적 형태를 띠고 있다. 더욱이 주최측이 20~30대의 젊은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들은 팁 근로자의 임금 인상 및 근무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팁을 받는 수백만 명의 근로자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올바른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현재 OFW에는 약 300,000명의 서비스 근로자, 2,000개 이상의 레스토랑 고용주가 전국적으로 수십 개의 조직으로 연대하여 미국 전역에서 캠페인 및 시위를 벌이고 있다. (7)
마무리 – ‘자발적인 감사’를 넘어서 사회 구조가 낳은 ‘암 덩어리’, ‘팁 문화’
미국의 팁 문화는 유럽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자발적인 감사’와는 전혀 다른 상류층들의 허영심과 교만이 만들어낸 하나의 장신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현재에 이르러선 폐지된 ‘노예 제도의 유산’으로서 사회 최하층의 노동력 착취를 위한 도구로 교묘히 이용되고 있다.
26년 동안 동결된 최저 시급 $2.13를 받는 노동자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개인 소비자의 ‘팁’이란 불편한 사실을 통해 미국이란 거대한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개인의 희생’이라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코로나 판데믹 이후 미정부의 사회안전망 확충에 실패한 결과가 ‘팁플레이션’을 가져오고,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팁 문화’를 만들어내었다는 점도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겉만 멀쩡한 모래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미국이 ‘팁 문화’라는 암 덩어리를 재빨리 도려내지 않는다면 ‘하늘에 닿을 듯 뻗어있던 바벨탑’처럼 한순간에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도 미국의 사례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탄탄한 사회적 제도를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출처
- 1) Ashlen Wilder, The History of Tipping in Restaurants: The Complicated Past, Present, and Future, 7Shifts, 2022/10/26
- 2) Michelle Alexander, Tipping Is a Legacy of Slavery, New York Times, 2021/2/5
- 3) Matt Zajechowski, Tipping culture in America: Foreign visitors feel intense pressure to tip when in the U.S., survey finds, prepay, 2023/5/14
- 4) Dana Miranda, Kelly Main, U.S Digital Tipping Culture In 2023, Forbes Advisor, 2023/2/22
- 5) CNNwriter, Digital Tip Jars: New tipping trend has customers sweating it out at checkout counter, abc7witness News, 2022/12/7
- 6) Economy, As digital payments become commonplace, tipping frustrates some consumers, PBS News Hours, 2023/1/23
- 7) One Fair Wage, Ab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