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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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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pl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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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은 페스트라고도 부르는 유행성 감염 질환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재난이 있었지만, 사망자의 수만 본다면 중세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흑사병이 가장 규모의 큰 재앙이다. 이 질환은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약 3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흑사병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 질환은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 지역을 건너 흑해, 크림 반도를 거쳐 이탈리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크림 반도의 카파는 지중해를 무대로 동방 무역을 하던 제노아 상인들이 오랫동안 경영한 도시였다. 1347년 이 성채를 포위 공격 중이던 타타르군은 영내에 흑사병이 발생하자, 환자들의 시체를 일부러 성벽에 내버린 후 철수하였다. 이는 일종의 세균전과 같은 발상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성내로 전파된 흑사병은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이 무서운 역질을 피해 본국으로 철수한 이탈리아인들이 상륙한 순서에 따라 흑사병이 메시나, 제노아 등지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한편 흑사병의 공포는 유럽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데, 우선 예술의 후퇴를 가져왔다. 예술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창의력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난 후 그 자리를 메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호하던 여행은 이제 금기가 되었다. 따라서 운이 좋아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그릴 만한 것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 즉 페스트가 남긴 공포의 기록뿐이었다. 이 시대에 수많은 흑사병 관련 작품이 전해 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다음에 나타난 현상은 사회 계층의 급격한 변동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은 지주의 파산으로 이어졌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은 급격히 상승했다. 게다가 금은보화는 아무리 쥐벼룩이 공격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은 재산이 할당되었다. 이 시대만큼 졸부가 급격히 출현한 시대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졸부들은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머리를 채우기보다는 겉모습에 신경 쓰는 법. 그들로 인해 패션 산업이 급격히 성장했다.
 

한편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수도원 때문에 성직자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성직자의 공급이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결국 이전까지 성직자 희망자에게 요구하던 자격 조건은 완화될 수밖에 없었고, 미신과 이단에 쉽게 흔들릴 만한 인물들도 이 시기에는 성직자로 양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결과 일반 백성들의 공포에 휩싸인 심리 상태를 이용한 온갖 미신과 이단이 출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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