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언젠간 나락을 간다.”
한때 큰 인기 끌었던 유튜브 콘텐츠, ‘나락퀴즈쇼‘의 첫 멘트다. 이 쇼에서는 유명 유튜버, 공무원,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이 출연하여 정치, 사회, 역사, 사생활 등 선뜻 대답하기 힘든 곤란한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난처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어 대중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누군가의 불편함과 실패를 상품화했다는 부정적인 질타를 받으며 결국 8회 만에 콘텐츠 제작이 멈추게 된다.(1)
이후 ‘나락’이라는 표현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연예인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실수나 실패한 사람에게 심한 비난과 혐오를 쏟아내며 경쟁하듯 상대를 나락으로 몰아가는 기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왜 한국 사회가 ‘추락이 일상이 된 사회’, ‘타인을 끌어내려야 만족하는 시대’가 되었는지 심리적, 기술적, 사회적 관점에서 탐구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특히, 온라인에서 헐뜯기 문화가 왜 이렇게 쉽게 퍼지는지, 헐뜯기가 어떻게 확산되는지, 그리고 타인을 나락으로 몰아넣었을 때 우리의 감정 상태는 어떻게 변하는지를 최근 연구 논문과 심리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찾아보았다.
이 글은 한국 사회의 혐오 현상에 관심이 있는 분들, 심리학을 전공한 분들,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고민이 많은 분들께 흥미로운 글이 될 것이다.
“나락 문화”가 한국 사회를 장악한 이유: 헐뜯어야 행복해지는 세상
오늘날 초연결 사회에서 개인의 실수나 실패는 더 이상 감춰질 수 없다. 특히 빠른 디지털 환경을 갖춘 한국에서는 자신의 ‘디지털 발자국’을 숨기는 것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처럼 불가능하다.
더욱이, 개인의 실수나 실패는 대중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새로운 자극제’로 소비되고 있다. 실수나 실패를 한 인물은 온라인이라는 단두대에 올라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는 것처럼 처벌받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나락의 시대’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락’이 무엇인지, 이러한 현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사회적 현상인지 관련된 사실을 알아보자.
⚫ ‘나락’이란 무엇인가?
‘나락’은 본래 인도의 고대 용어 ‘나라카(naraka)’에서 유래한 ‘지옥’을 뜻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이 단어가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완전히 추락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인터넷에서부터 TV 예능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나락’은 실패를 조롱하고 이를 즐기는 대중적 문화로 발전해왔다. (2)
⚫ 한국의 ‘나락 문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개인이나 공인이 사소한 실수 하나로 사회적 지옥에 빠지는 상황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하나의 문화로 규정하며 ‘나락 문화’라 일컫는다. 나락문화의 핵심은 평판의 파괴와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을 가장 낮은 위치로 끌어내리는 ‘마녀사냥’이다. 그리고 대상은 특정 유명인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인도 포함되며, 누구나 언제든 나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볼 수 있다. (3)
⚫ 한국에서의 ‘나락 문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나?
사실 ‘나락’을 즐기는 콘텐츠는 예전에도 존재했다. 2000년대 <쇼 파워 비디오> 속 ‘요절복통 해외 비디오’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몰래카메라’ 코너 등은 연예인이나 일반인의 의도치 않은 실수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모습을 ‘긍정의 웃음거리’로 삼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나락 문화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평판과 사회적 위치를 한순간에 추락시키는 강력한 도구로 변모했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연예인의 무대 밖 사생활이나 NG 장면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면, 이제는 일반인의 실수조차도 나락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누군가의 흑역사가 드러나면, 사람들은 그동안 쌓아온 모든 평판이 무너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다음 타겟을 찾아 나선다.
⚫ ‘나락 문화’ 유독 한국에만 존재하나? 외국에는 없나?
이런 현상은 해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캔슬 컬쳐(Cancel Culture)’라는 용어로 불리며, 개인이나 단체가 잘못된 행동이나 발언을 했을 때 사회적 지지를 철회하고 배척하는 현상을 뜻한다. 주로 유명인이나 공인이 그 대상이 되며, SNS를 통해 집단적인 비난을 받는다. 이는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여겨지지만, 과도한 처벌이라는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드림 시나리오‘ 역시 이러한 ‘캔슬 컬쳐’를 풍자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평범한 중년 교수가 갑작스럽게 모두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통해 이 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드림 시나리오’ 영화 무료보기 사이트 링크를 첨부한다. 만약 접속이 안되면 『시크릿 DNS 』를 설치·실행하면 시청이 가능하다.
나락의 시작 – 왜 우리는 악플을 달까?
누군가를 나락으로 몰아넣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되는 도구 중 하나가 ‘악성 댓글(이하 악플)’이다. 악플은 혐오와 비난을 담아 온라인상에서 타인을 악의적으로 깎아내리는 글로, 이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악플을 다는 것일까? 심리 전문가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악플을 다는 이유. 1
사회적 위계와 자존감 방어를 위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더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느끼기 위해 고의적으로 타인을 헐뜯고 비난한다. 이는 타인을 낮춤으로써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일종의 방어 기제’라 볼 수 있다.(4) 특히, 자신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더 강하게 타인을 비난하는 경향을 보인다.(5)
더욱 흥미로운 점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더욱 공격적인 악플을 많이 달며 이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타인의 성공을 자신의 실패로 여기고, 타인의 실패를 자신의 성공으로 여긴다.(6) 또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시기와 질투심이 더 강해, 가까운 지인의 성공을 목격했을 때 느끼는 정신적 고통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보다 더 크다.(7)
결국, 사회적 위계와 자존감 방어를 위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타인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을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며, 온라인 환경에서는 이러한 행동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
실직 상태의 이민성 씨(가명)는 불륜을 저지른 연예인에게 과도할 정도로 악플을 달며 자신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믿는다. 그는 하루 종일 그 연예인과 관련된 기사에 악플을 달고, 술자리에서는 그 연예인을 언급하며 자신이 실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자랑한다.
이민성 씨는 부도덕한 연예인을 비난함으로써 ‘실직자’라는 자신의 부정적 평가를 덮고,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우월한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믿으려 했다. 악플은 그의 자존감을 방어하는 일종의 ‘자기 보호 수단’인 셈이다.
악플을 다는 이유. 2
온라인의 독특한 환경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긍정적인 모습을 보며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격적인 댓글을 달거나 타인을 비난하는 행동을 통해 일시적인 우월감을 느끼려 한다. 이는 누군가를 나락으로 보내려는 이유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악플러가 자존감이 낮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요인은 없는 것까?
심리학자들은 악플을 다는 또 다른 원인으로 ‘온라인이 갖는 독특한 환경’을 지목한다. 익명성 덕분에 타인을 비난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고, 그 결과 ‘악플’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확증 편향, 에코 챔버 효과, 그리고 사회적 전염 현상도 악플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 익명성의 보호막
2. 확증 편향과 에코 챔버 효과
3. 사회적 전염
4. ‘좋아요’의 보상구조
5. 공격적 문화의 악순환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 이러한 ‘익명성’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덜 느끼게 하며, 현실에서는 하지 않았을 말이나 행동을 온라인에서는 여과 없이 서슴지 않고 하게 만든다.
실제 연구에서도 익명 상태의 참가자들이 비익명 상태일 때보다 더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 관측되었다. 또한, 익명의 환경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그룹에 더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8)
익명성의 이면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익명 커뮤니티 중 하나였던 소라넷을 들 수 있다. 소라넷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전신이자 ‘디지털 성폭력’을 공론화한 장본인이다.
이 사이트는 단순히 음란물을 보는 다른 사이트와 달리, 익명의 사용자들이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고, 피해자들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글을 올렸다. 또한, 처음에는 단순히 방관하던 사용자들조차도 점차 자극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에 동조하게 되면서, 익명성이 집단적 잔인함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결국, 익명성의 보호 아래 이루어진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개인적 악의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겪었으며, 디지털 공간에서의 윤리와 책임에 대한 논의가 절실해졌다. 그리고 소라넷의 폐쇄와 함께 온라인에서의 자율 규제와 법적 조치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9)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지지하는 정보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확증 편향에 빠지면,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나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특정 정치인을 좋아한다면, 그 정치인에 대한 긍정적인 기사만 보고, 부정적인 정보는 외면하거나 믿지 않는 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새로운 정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확증 편향이 개인의 심리적 경향이라면, ‘에코 챔버(Echo Chamber)’는 이러한 편향이 온라인에서 더 강화되는 환경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에코 챔버는 ‘메아리가 울리는 방’처럼,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동일한 의견을 반복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환경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이 더욱 강화되고 확고해지게 된다.
온라인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 사이트, 유튜브 알고리즘 등은 사용자가 선호할 만한 콘텐츠나 사람들을 추천해준다. 그 결과, 사람들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러한 반복적인 상호작용은 기존의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들고, 새로운 정보나 다른 의견에 대한 개방성을 점점 줄어들게 만든다.
김수연(가명)은 개그우먼 신하나(가명)를 미칠 듯이 싫어한다. 자신보다 뚱뚱하고 못생겼는데도 잘생긴 남자 배우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불쾌함을 넘어 역겨움을 느낀다. 그래서 김수연은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하나에 대한 악성 글을 매일 쓰기 시작했다.
‘신하나 너무 설친다.’ ‘남자 배우만 보면 눈이 뒤집힌다.’ ‘살이 더 찐 것 같다.’ 등 그녀가 올린 원색적인 비난 글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동의하는 댓글을 달았다. 김수연은 자신이 쓴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더욱 확신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커뮤니티를 넘어 신하나의 인스타그램에 직접 악성 DM을 매일 보낸다. 신하나가 더 이상 미디어에 나오지 못하게 할 때까지, 이 짓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비난은 강렬한 감정적 경험을 동반하며, 사람들은 이러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비난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더 빠르게 퍼지는데, 이를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전염이란 감정, 행동,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슬퍼하면 나도 슬퍼지고, 한 사람이 웃기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도 함께 웃게 되는 것처럼, 이러한 현상은 감정뿐만 아니라 비난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도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온라인에서 더 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과 감정을 매우 빠르게 접할 수 있다. 댓글, 게시물, 뉴스 기사 등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게 되며, 이때 다른 사람들이 올린 비난 글이나 악성 댓글을 자주 접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와 비슷한 감정에 동조하게 된다. (10)
이한경(가명) 씨는 자주 들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개그우먼 신하나(가명)에 대한 글을 자주 접한다. 처음에는 신하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었지만, 반복적으로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그녀가 더 못생겨 보이고, 행동 하나하나가 천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어느 날부터는 그녀가 나오는 방송을 보면 채널을 바로 돌리며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날의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특정 행동이 ‘좋아요’나 ‘공유’ 같은 즉각적인 보상을 받는다. 이러한 보상 시스템은 사용자들이 플랫폼에 더 자주 참여하도록 유도하도록 설계되어있다.
흥미로운 점은 소셜 미디어에서 받는 ‘좋아요’나 ‘공유’가 즐거움과 보상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 분비를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수많은 ‘좋아요’를 한번에 받은 놀라운 경험은 뇌의 보상 회로와 연관된 선조체(striatum)와 흑질(중뇌의 피개 부위)을 활성화시켜, 로또 1등에 당첨되었을 때와 매우 유사한 심리적 반응을 일으킨다.(11)
이러한 이유로 SNS에 중독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좋아요’와 ‘공유’를 얻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왜 가짜 뉴스를 쉽게 믿을까?』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충격적인 뉴스나 논란이 되는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면서, “자극적인 내용을 올리면 더 많은 정신적 그리고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나락을 부채질하는 사이버렉카’이다.
사이버렉카란?
“사이버 렉카”는 논란이 되는 사건이나 이슈를 빠르게 콘텐츠로 제작해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버나 콘텐츠 제작자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이들은 자극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조회수와 광고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특히 유명인이나 부정적 사건을 다루며, 사회적으로 논란을 부추기고 때로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행위로 비판받는다. 이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만, 일부 팬덤은 그들을 정의로운 존재로 인식하며 금전적 후원까지 이어진다.(12)
개그우먼 신하나(가명)를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글을 올리는 김수연(가명) 씨. 그녀는 자신의 글에 수많은 ‘좋아요’와 ‘공유’가 달릴 때마다 자신의 발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 짜릿한 기분은 그녀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점차 그녀는 더욱 충격적인 거짓 스캔들까지 만들어내며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김수연 씨는 모욕죄로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진실을 말한 죄밖에 없다며 게시판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후원 계좌를 열었다. 그리고 그녀는 소소하게 입금되는 후원금을 보며 자신이 그 못난 개그우먼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은 유명인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결국, 자신이 법적 싸움에서 승소할 것이라는 큰 착각에 빠져든다.
댓글이나 게시글을 통해 비난이 반복되고 이를 제재하는 행동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행동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타인을 공격하는 일이 잘못된 행동으로 여겨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저항감이 점차 줄어든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비난에 가담하기 때문에 “나도 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며, 온라인 공간에서 비난과 헐뜯기가 오히려 정상적인 문화처럼 느껴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헐뜯기 문화’가 특별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행위에 가담하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비난하는 댓글을 보고 지나쳤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이것이 앞서 설명한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 현상이다.
결국, 비정상이 정상으로 자리 잡은 온라인 환경에서는 죄책감이 사라지고, 위험 수위를 넘어서게 된다.
나락의 온상 – 왜 한국에서 온라인 헐뜯기 문화가 유독 심할까?
한국의 온라인 문화에서 헐뜯기, 특히 ‘악플’이라고 불리는 악성 댓글은 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걸까? 이는 단순히 인터넷 상에서 발생하는 개인 간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깊은 구조적, 문화적 배경이 얽혀 있는 현상이다. 한국에서 온라인 비난 문화가 특히 심각한 이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자세히 들어다보자.(13)(14)(15)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혐오 문화
‘일베’, ‘메갈리아’,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성적 혐오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 GS 메갈사태’로 본 ‘혐오와 갈등’, 왜 그들은 이런 짓을 했을까? 』『충격! 페미니스트 손짓하나가 만든 르노코리아의 대위기 』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1. 높은 인터넷 보급률과 모바일 사용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와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한다. 이러한 기술적 환경 덕분에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에 접속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함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빠르고 광범위한 온라인 연결은 긍정적인 의견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 비난, 그리고 헐뜯는 행동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할수록, 의견 충돌이 빈번해지고, 그로 인해 비난 문화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
2. 경쟁적인 사회 구조
한국 사회는 학업, 직장, 외모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불만이나 스트레스를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특히 온라인의 익명성은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비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한국의 경쟁 사회 구조는 이러한 온라인 헐뜯기 문화를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3. 유명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
한국에서는 유명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미디어는 유명인의 사생활과 일거수일투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작은 실수조차도 쉽게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연예인들이 사소한 실수를 하면, 그들은 종종 온라인에서 거센 비난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며, 이는 연예인들에게 심리적인 부담과 큰 고통을 안겨준다. 대중은 이 과정에서 더욱 자극적인 비난을 통해 유명인의 실수를 지적하며, 그로 인해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
4.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
한국은 집단주의 사회로, 개인보다는 집단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눈치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 같은 환경에서 한 사람이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비난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흐름에 쉽게 동참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특정 주제에 대해 하나의 비난 흐름이 형성되면, 그 비난이 집단적으로 확대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비난에 가담하는 ‘집단적 비난’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5. 사회적 스트레스와 분노의 표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학업, 취업, 경제적 불안정 등 다양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스트레스는 온라인에서 비난이나 헐뜯기로 쉽게 표출된다. 불만이 쌓인 사람들은 현실에서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할 때,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온라인 헐뜯기는 점차 스트레스 해소의 출구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6. 사회적 약자와 비난의 대상화
또한, 한국 사회의 내집단 편향과 같은 심리적 요인도 온라인 비난 문화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도덕적이고 우월한 집단으로 여기며, 외부 집단을 쉽게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 불안을 완화하려 한다. 예를 들어,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민자, 외국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난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자신보다 더 약한 대상을 공격함으로써 일시적인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7. 익명성 보장과 법적 제재의 미비
익명성은 온라인에서 비난이 심각해지는 또 다른 원인이다. 한국의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는 익명성을 보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이 책임감을 덜 느끼고 과격한 비난을 쉽게 할 수 있게 만든다. 과거 한국의 주요 포털 사이트들이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댓글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비난 문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비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은 사람들이 더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 게다가, 온라인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제재가 과거에는 미흡했던 점도 비난 문화의 확산에 기여했다.
마무리 – 우리는 ‘나락의 시대’에 살고있다.
충격적인 친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급하게 아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후, 2주간 경험한 한국의 변화는 나를 깊은 충격에 빠뜨렸다. 한국 사람들의 무뚝뚝한 표정, 서로를 경계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다. 나 또한 이러한 달라진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다.
상가집에서 친척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달라진 한국 분위기에 대해 물었다. 그때 친척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다 힘드니까 그렇지. 요즘 사람들이 다 제정신이 아니야. 어딜 가도 조심해야 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못하면 바로 ‘나락행’이지. 다들 서로를 경계하고 조심하는 거야. 저번에 그 연예인도 바로 나락 갔잖아. 유튜브 영상으로 퍼져서…”
그때 나는 ‘나락’이라는 단어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 단어는 달라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 충분했다. 나는 이 주제를 글로 풀어보기로 결심하고, 집에 돌아와 한 달간 자료를 조사하며 한국의 ‘나락 문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 문화는 한국의 디지털 환경, 사회적 압박, 그리고 한국 사회의 독특한 구조가 결합된 현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소한 실수조차 대중의 비난을 받아 자극적인 소비재로 전락하는 이 환경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경계심을 갖고 무뚝뚝해지며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다. ‘나락 문화’는 단지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과연 한국 사회는 변화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온라인 상에서의 윤리와 책임감을 심어주는 근본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비난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과 상호 존중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이러한 변화를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출처
- 1) 도우리 작가, 불편의 콘텐츠화… 나락퀴즈쇼의 선풍적 인기 요인은?, 이투데이, 2023/12/8
- 2) 장근욱 기자, 추락이 일상이 된 사회… 꽉 잡으세요, 나락 갑니다, 조선일보, 2024/8/23
- 3) 이가은 기자, 폭로와 나락, 문화가 되다, 충대신문방송사, 2024/6/5
- 4) Gilbert, P., & Miles, J. (2000). Sensitivity to Social Put-Down: it’s relationship to perceptions of social rank, shame, social anxiety, depression, anger and self-other blame.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 5) Robertson, T., Sznycer, D., Delton, A., Tooby, J., & Cosmides, L. (2018). The true trigger of shame: social devaluation is sufficient, wrongdoing is unnecessary.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 6) Smith, R., & Kim, S. (2007). Comprehending envy.. Psychological bulletin
- 7) Rentzsch, K., Schröder–Abé, M., & Schütz, A. (2015). Envy mediates the relation between low academic self-esteem and hostile tendencies.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 8) Rösner, L., & Krämer, N. (2016). Verbal Venting in the Social Web: Effects of Anonymity and Group Norms on Aggressive Language Use in Online Comments. Social Media +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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