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독일인과의 잠시 여행을 함께한 적이 있다.여행하는 동안 한국에 관심있던 독일인 친구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내가 얼마나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후 나는 30살에 다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 역사와 관련한 박물관을 찾아다녔고, 일 년 반 동안을 문화 해설사로 일했다. 오늘은 13년 전의 일기장과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을 바탕으로 내가 왜 30살이 넘어서 역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지 그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려고 한다.
회사를 관두고 배낭여행을 하던 중에 만났던 독일인 친구가 기억난다. 그때 난 말레이시아 배낭여행 중이었는데 장기 여행에 지쳐 어느 외진 어촌 마을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가 머무른 지 삼일째 되는 날, 한 독일인이 게스트 하우스에 숙박을 하러 왔다. 볼거리라곤 근처 작은 국립공원과 사람 없이 적막한 갯벌이 있는 바닷가뿐인 한산한 지역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는 사람이라고는 그 친구와 나 둘뿐였고 할일도 별로 없는 터라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신의 이름을 랄프(Ralph)라고 소개한 그 친구는 컴퓨터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는데 지금은 휴학 중이며 자신을 알기 위해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전형적인 독일인이라고 설명하면 맞을 정도로 키가 컸으며, 성격은 시원시원한 반면에 모든 일처리는 완벽하고 깐깐했다.
항상 나갈 때는 지도를 들고 다니며 위치를 늘 확인했고, 음식을 먹기 전에 항상 가격을 확인하고 흥정까지 했다. 그래서 같이 다니면 그가 모든 것을 해결해줬기에 그는 나의 관광가이드였으며 여행 중에 만난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 둘은 거의 일주일간 친 형제처럼 함께 다녔다.
할 일이 별로 없어 낮에는 국립공원에 등산을 가거나 바닷가 근처를 산책하고, 밤에는 근처 야시장에서 음식과 맥주를 사와서 같이 먹으며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보통의 하루 일과였다.
이야기 주제는 무척 다양한 편이었는데 보통 그 친구가 물어보면 나는 답하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그때 당시 나의 영어 실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라 기본 회화에 모르는 단어는 전자사전을 찾아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랄프는 뛰어난 영어실력뿐만 아니라 언어적 감각도 타고나서 내가 개떡같이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어 어떻게든 대화를 물흐르듯이 부드럽게 이어나가게 하는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유독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정말 끊임없이 물어봤다. 남북한의 정세, 한국전쟁 당시 국제 상황, 일제 침략기 때 일본의 만행 등 시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질문을 해댔는데 그중 몇몇 질문들은 까다롭고 날카로워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구차한 핑계를 대고 그냥 맥주만 마셨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참후 내가 그에게 왜 이렇게 역사에 관심이 많은지 물어봤다. 그가 독일에서는 역사수업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며,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는 것은 지성인이 지녀야 할 필수 덕목 중 하나라는 생각을 독일인 모두가 갖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우리 선조가 저질렀던 나치 범죄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도록 가르쳤기 때문이야. 우리가 저질렀던 일에 대해 잘못한 걸 인정하고 앞으로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의도로 정부차원에서 실시한 거지.
김나지움(Gymnasium) 5, 6학년 때 역사를 배우지만 깊이 있고 비판적인 내용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해. 특히 고등학교 현대사 과목에서는 20시간 이상을 제2차 세계대전 시기만 배워. 그때 독일인이 저질렀던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 등의 비극적인 나치 범죄를 단순히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배우는 데서 수업이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우리가 답하고 토론을 해.
우리는 누구 생각이 맞고 틀렸는지 중요하지 않다고 배웠어. 단지 서로의 다른 생각을 들어보고 내 생각과 비교해가며 역사를 배워나가는 거지. 난 분명 이 수업을 통해 역사에 대한 안목을 기르고 역사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아.
나의 역사 선생님은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어. 그래서 이렇게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그 나라의 역사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어. 아마 너의 역사가 내가 찾고 있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지 몰라 그렇게 많이 물어봤던 거야.’
그의 당차고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처음 든 생각은 ‘선진국의 교육이 이래서 다르구나’ 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과 역사를 보는 관점과 인식이란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몰려왔다. 그날 난 정말 미친듯이 맥주를 마셔댔고, 다음날 죽음과도 같은 숙취를 경험했다. 지옥의 문턱을 갔다 와서인지 그날의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지금까지도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아쉽게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와 연락을 하고 있지 않고 있지만, 그와의 짧지만 굵은 일주일간의 여행은 앞으로의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는 것은
지성인이 지녀야 할 필수 덕목 중 하나다.”
그렇게 두 달여간 한국 역사와 관련한 교수님들과 전문가들에게서 조선시대 건축양식과 문화, 역사를 배운 후에 문화 해설사로 일 년 반을 일했다. 비록 돈을 받지 않는 무보수 자원봉사였지만, 그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값으로 매기기 어렵다.
근 일 년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역사와 관련한 박물관을 가는 일이었다. 철없던 때 난 박물관에서 한 시간 이상을 버티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꼼꼼히 안내문을 읽었고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꼴로 여러 박물관을 정복하듯이 다녔던 어느 날, 어느 박물관 현관 앞에서 ‘문화 해설사 모집’이라는 포스터를 보았고 난 한순간의 고민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지원을 했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게 그렇게 일 년 반을 문화 해설사로 활동해 보니, 한국의 역사가 다른 나라와 견주어도 절대 손색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해외를 다니면서 다른 나라 문화에 감탄하며 한국에는 이런 것이 왜 없을까란 생각을 일기에 적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문화해설사가 된 후의 나는 한국의 문화재가 다른 어느 나라의 문화재와 견주어도 절대 손색이 없다는 사실에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문화 해설사 활동을 한 후 해외에 나와 생활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한국 역사와 관련된 책을 꾸준히 읽고, 역사 관련 팟캐스트를 들으며 나의 뿌리가 어디인지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그 덕분인지 나는 외국 어디에있던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행동하려고 한다. 분명히 나처럼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시는 분이라면 나와 비슷한 마음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태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내 자식들에게 한국문화와 역사를 자세히 알려줘야 할 분명한 의무가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나의 자녀들은 한국의 역사를 통해 흔들림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것이며, 독일인 랄프처럼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풀 수 있는 ‘자신만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