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다 보면 매일 우리가 알듯, 모를 듯, 그러나 불쾌한 여러 차별들을 받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 차별들 중 가장 대표되는 하나가 바로 ‘키’ 일 것이다. ‘키로 인한 차별’. 이것은 비단 한국이라는 동양권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양권에서도 비슷한 차별은 존재해왔다. 사실 우리가 동물인 이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요소인 ‘키’가 차별의 요소인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키가 작은 사람은 어떠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진지한 답변을 찾아보고자 한다. 키에 대한 차별, 하이티즘(Heightism)을 자세히 알아보고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 해결책은 없는지 알아보았다.
키로 인한 차별과 멸시를 받고 계신 분, 인관관계에서의 통찰을 원하시는 분, 사회 심리학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재미있는 읽을 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

한국 내에서 키에 대한 차별이 크게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11월이라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미녀들의 수다’란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참석한 한 여성이 “내 키가 170cm라서 180cm 이상의 남자를 원한다”,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 실패자)라고 생각한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 몇 마디 말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다준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남녀가 남자의 키로 갑론을박 토론을 버렸고, 오죽하면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도 다룰 정도였다. (1) 이 사건 이후, 키가 작은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키 작은 사람들은 자신이 겉 사이즈를 강요하는 현대사회의 하이티즘(Heightism: 키 작은 사람에 대한 차별이나 멸시)과 루키즘(Lookism: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을 중요시하는 현상)의 피해자라며 불만을 본격적으로 토로하기 시작했다.
키는 또 하나의 권력
프랑스의 사회학자 니콜라 에르팽(Nicolas Herpin)는 그의 저서 ‘키는 권력이다’에서 키 큰 남자가 키 작은 남자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단순한 가설이 아닌 사회학, 인류학, 생물학, 사회심리학, 고용 경제학, 교육사회학, 인구통계학 등 여러 학문의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하였다.
에르팽은 다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통계 조사를 통해 키에 대한 차별은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사회 현상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그의 발견은 다음과 같다.(2)
한국에서의 키 권력
에르 펭의 연구 조사 결과는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하이티즘(Heightism)은 어느 다른 나라보다 더 두드러졌다.
보건사회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17세 이하 남자의 평균 키는 월소득 300만 원 이상의 가구에서는 129.8cm인 반면, 100만 원 미만의 가구에서는 122.4cm로 무려 7.4cm나 차이가 났다. (3) 이런 부의 불평등에서 오는 키 차이는 결국 30 ~ 40대에 신장에 따른 임금의 불평등을 만들어 냈다. 2010년 ‘한국 노동시장에서의 신장 프리미엄’이란 연구 논문에서 키가 1cm 증가함에 따라 연간 약 40만 원 정도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러한 키에 따른 임금의 차이 (3.8%)는 미국(2.5%), 영국(2.7%) 보다 컸다. (4)
여자의 경우도 키는 ‘스펙’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되었다. 2018년 ‘노동시장 이행과정에서의 신장 프리미엄’ 연구에 따르면 장신 여성은 평균 키 여성보다 취업 가능성이 3.4배 높았고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가능성도 3배 높았으며, 급여도 마찬가지로 12.6%나 많이 받았다.

키 차별의 해결방안
이처럼 키 차별이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 뿐만 아니라, 세대를 이어 재생산하는 중요한 문제라면, 이를 해결할 방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키는 권력이다’의 저자 에르 팡은 키에 따른 차별 금지를 사회운동으로 확산하여, 키 차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함으로 키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키 차별 금지법은 인권과 차별금지 차원에서 미국과 캐나다 일부 주에서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차별금지법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인권위 권고로 제정 논의가 시작된 후, 지난 17~19대 국회에서 총 6건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제정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6)
차별과 편견의 나라, 한국
한국에서 살 때,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서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정말 요즘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였다. 비싼 한국 물가와 집값, 치열한 경쟁, 개인주의, 기본 예의 상실 등 많은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의 생활이 힘들겠지만, 유독 한국 내의 다양한 ‘차별과 편견’이 큰 한 목을 차지한다고 생각이 든다. 남성, 여성,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등에 대한 차별과 편견들 때문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인터넷에서 논쟁을 하고, 그와 관련된 뉴스를 거의 매일 접하고 산다. 많은 차별과 편견들 중 하나인 ‘키’를 고른 이유는, ‘키 차별’이 부(富)에 의한 사회적인 불평등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였다.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한 번에 고치는 데는 분명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해결책을 찾을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인 노력과 차별 금지법의 시행으로 앞으로 내 아이가 자라날 한국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변화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출처
- 1) 김종한 기자, 키작은 男 비하… 인터넷은 지금 ‘루저의 난’, 한국일보, 2009/11/12
- 2) 니콜라 에르팽, 키는 권력이다, 현실문화, 2008/3
- 3) 박선이 기자, 우리는 왜 큰 키에 집착하는가, 조선닷컴, 2008/3/21
- 4) 박기성, 이인재, 한국 노동시장에서의 신장 프리미엄, 2010/12
- 5) 민나리 기자, 씁쓸한 외모지상주의… 여성의 키는 ‘스펙’, 서울신문, 2018/1/8
- 6) 허현덕 기자, ‘차별금지법은 나중에’라는 인권위원장 소식에 인권단체 반발, 비마이너, 2019//9/18